도서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연날 2019. 8. 28. 16:36
자기 앞의 생

 

1975 발표

2019. 8. 읽음


 

연극 '자기 앞의 생'을 보고나서 책으로 다시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연극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해가 안가서. 그리고 좀 지루했어서..

'인종을 뛰어넘는 사랑'이 주제인가? 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사람은 사랑없이는 살 수 없다.'가 주제였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모모의 생을 따라가다가, 그녀의 마지막을 어떻게 함께했는가를 보며 먹먹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으니까.

 

끝까지 읽고 바로 다시 첫장을 펼치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책이었다.

 

같은 작가에게 다시 수상하지 않는다는 공쿠르상을 두번 수상한 유일한 사람이 로맹 가리이다. 그는 자살하면서 사실은 에밀 아자르가 자신이었다고 밝힌다. 소설같은 삶을 산 소설가이다. 두번째 수상한 작품이 바로 이 자기앞의 생이라고 한다. 에밀 아자르와 로맹 가리가 유사하다는 논란에 대해 평론가들은 "로맹 가리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로맹 가리는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대단한 작가다.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프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7층에서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 가장 나이가 많은 열 살 모모를 돌보는 늙은 로자 아줌마는 전직 창녀였다. 로자 아줌마는 암에 걸리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모모는 엄마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실 자신의 정확한 나이도 알지 못한다. ‘은밀한 집’이라고 불리는 그 집에는 거의 다 창녀의 아이들이 맡겨져 있고, 어린애들이 그렇듯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모모는 훔친 푸들 한 마리를 돌보다 애정을 주게 되었으나, 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멋진 삶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에 500프랑을 받고 남에게 줘버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마음은 행복감으로 가득했다. 이런 모모를 로자 아줌마는 카츠 선생님에게 데려가 진찰을 받게 하지만 정작 의사는 모모가 아주 정상이라며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준다.

양탄자를 파는 하밀 할아버지는 항상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종종 코란으로 혼동하기도 하며, 모모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모모에게 사람은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모모의 친구 르 마우트가 주사약을 착각해서 로자 아줌마에게 헤로인을 주사하게 되는 일 등이 벌어지고, 모모는 녹음실에서 영화의 등장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불어넣어주는 일을 하는 나딘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 나딘 아줌마는 로자 아줌마가 죽고 난 이후에 당분간 모모를 데리고 있게 된다.

사실 로자 아줌마는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외출 중인 상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즉 일종의 정신 노쇠 현상으로 인한 치매에 걸리게 된다. 로자 아줌마가 다행히 정신이 온전할 때 모모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11년을 보내고 세 살 때 맡긴 모모를 찾아온다. 그 일로 인해 모모는 열 살에서 한순간에 열네 살임이 밝혀지지만, 로자 아줌마는 옆에 있는 모모를 아버지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갑자기 열네 살이 된 모모는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자 아줌마는 더 빈번하게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되고, 모모의 도움으로 건물 지하실에 준비해둔 일명 ‘유대인 동굴’에서 숨을 거둔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을 기억한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었다. 모모의 마지막 말은 이것이다. 사랑해야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기 앞의 생 [La vie devant soi]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프랑스문학, 2013. 11., 김용석, 김한식, 위키미디어 커먼즈)

 

 

 

p.22

로자 아줌마는 바나니아에게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 애는 천하태평이었다. 그 애는 겨우 세살이었고, 가진 거라곤 미소밖에 없었으니까. 로자 아줌마는 바나니아는 민빈구제소에 보낼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아이의 미소만은 떠나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와 아이의 미소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수없이 둘 다 데리고 있을 수밖에.

 

p.55

로자 아줌마는 사람은 꿈을 많이 꿔야 자란다고 했는데, 보로라는 사람의 주먹이 그렇게 큰 걸 보면, 그의 주먹은 쉴새없이 꿈을 꾸었나보다.

 

p.62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든가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p.69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란다."

 

p.95

그녀에게 덜 먹으려면 살을 빼는 수밖에 없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세상에 혼자뿐인 노친네에게 그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아줌마에겐 아무도 없는 만큼 자기 살이라도 붙어 있어야 했다. 주변에 사랑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사람들은 뚱보가 된다.

 

p.99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p.102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그를 바라보면서 말없이 미소를 보냈다.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겨우 서른밖에 안 된 그 젊은 친구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풋내기인 것을.

(모모는 14살임 ㅋㅋ)

 

p.114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p.242

끔찍했던 일들도, 일단 입 밖에 내고 나면 벌게 아닌 것이 되는 법이다.

 

p.295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p.307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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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스러운 문장들이 많은데, 나는 번역된걸 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아마 감흥이 반절은 깎이지 않았을까 싶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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